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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퍼드 대학교 - 미국 명문 대학의 설립 역사 1

세상이모저모

by 사월짱 2023. 6. 15.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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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서부의 최고 명문 사립대학교인 스탠퍼드 대학교는 스탠퍼드 주니어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대학입니다. 포스트 코넬이라고 불리는 스탠퍼드대의 설립역사에 대해 이야기해 볼게요.

 

스탠퍼드대학교-전경-썸네일
스탠퍼드대학교 출처: Stanford University

 

Stanford University의 공식 대학 명칭과 설립역사

스탠퍼드 대학교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스탠퍼드에 위치한 명문 사립대학교로 ‘포스트-코넬(Post-Cornell)’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대학입니다. 미국 동부의 아이비리그 대학이 8개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코넬대학교(Cornell University)입니다.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두 대학의 경쟁 관계를 강조하고자 사용되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스탠퍼드가 세워진 이야기를 좀 들여다보면 연관이 아예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 포스팅의 중간 부분에 보면, 스탠퍼드가 왜 포스트 코넬이라고 불리는지 좀 이해가 되실 겁니다.

스탠퍼드 대학은 1885년에 리랜드 스탠퍼드 부부, 리랜드 스탠퍼드(Leland Stanford), 제인 스탠퍼드(Jane Stanford)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그들은 유일한 아들이었던 리랜드 주니어 (Leland Junior)가 15세에 이탈리아로 여행 갔다가 장티푸스로 사망한 후에 고인이 된 아들을 기리기 위해 대학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스탠퍼드의 공식 대학명은 사실, Leland Stanford Junior University’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Stanford University라고 하지만, 사실 스탠퍼드 부부의 아들 이름을 정확히 넣은 게 이 대학의 공식명칭입니다.

 

스탠퍼드 대학 설립과 연관해서 여러 이야기가 전해오는데요. 어떤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 지어냈을 거다라는 추측도 있습니다. 여러 이야기 중 하나가 하버드 대학과 연관된 것도 있는데요. 아들과 이탈리아 여행에서 외아들을 잃자 스탠퍼드 부부는 아들이 1년 정도 다녔던 하버드에 찾아가서 기부 의사를 밝혔다고 합니다. 이때, 허름한 차림새의 부부를 보고, 하버드 관계자가 대학 건물을 짓는데 얼마나 드는지 아느냐고 약간 비아냥대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금액을 듣고 부부에겐 그게 그리 큰 액수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그것밖에 안 드냐며 그럼 차라리 아들을 위한 대학을 짓는 게 어떨까 생각하기 시작했다는군요. 이런 일화로 추후에 하버드가 땅을 치고 후회했다는 얘기가 있던데,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들의 나이가 당시 15세였는데, 그때 하버드를 다닐 수 있는 연령이었는지도 확실하지 않으니까요.

 

아들을 잃은 슬픔을 잠시 뒤로 하고, 스탠퍼드 부부는 자신들의 재산을 활용하여 다른 사람의 아이들을 위한 무언가를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스탠퍼드 대학은 설립 당시부터 전통적이지 않은 대학을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들은 남성만을 받아들이던 시대에 남녀공학을 도입하고, 종교 단체와 관련이 없는 비교교육을 제공하며, 실용적인 교육을 통해 교양과 유용한 시민을 양성하기로 합니다. 대학 설립 선언서는 학생들의 개인적인 성공과 삶에서의 직접적인 유용성을 위한 자격 부여를 목표로 하고, 인류와 문명을 위해 공공의 복지를 촉진하는 것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19세기 중반까지 우리가 흔히 아는 미국 명문대학교는 대부분 Co-educational(남녀공학)이 아닌 남성만을 위한 대학이었으며, 종교 중심의 교육을 제공했습니다. 그러다가 19세기 후반부터 여성 인권 운동과 급속한 사회적인 변화로 여성의 대학 교육에 대한 요구와 관심이 증가했고, 종교적 이념에 국한되지 않는 비종교적인 대학들도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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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퍼드 대학 캠퍼스 부지는 뮤움카 오론 부족의 조상들의 땅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땅은 오론 부족에게 매우 중요하며, 현재 대학과 오론 부족은 공동체 중심의 고고학, 역사적 해석 및 원생 식물 정원 분야에서 협력하고 있습니다. 리랜드 스탠퍼드는 캘리포니아의 주지사와 상원의원을 역임한 인물로서, 대학을 위해 자신이 벌어들인 부를 헌신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골드러시 때 캘리포니아 금광에서 금을 채굴하는 ’ 49 ers’에게 식량을 공급하여 재산을 축적했다고 합니다.

미국의 서부 개척 영화를 보면, 금 채굴하는 장면을 종종 보게 됩니다. 1849년에 캘리포니아로 금 채굴을 위해 몰려든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49ers’를 쓰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49 ers’는 1849년에 금을 찾기 위해 캘리포니아로 온 사람들, 이런 의미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상대로 리랜드 스탠퍼드가 사업을 해서 돈을 벌었고, 나중에는 센트럴 패시픽 철도를 운영하는 "빅 포" 중 한 명으로서 국가 간 철도 건설에 기여했습니다.

 

대학 설립 선언서에는 스탠퍼드 부부의 팔로 알토 축사도 포함되어 있으며, 스탠퍼드가 살았던 집으로부터 약 56km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스탠퍼드 부부는 대학에 양도한 땅이 판매될 수 없도록 규정했습니다. 이로 인해 현재의 캠퍼스는 여전히 "팜(the Farm)"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스탠퍼드 부부는 조경 설계사 프레더릭로 올름스테드와 협력하여 캠퍼스를 디자인했습니다. 그들의 협업은 사암으로 지은 건물과 적강지붕이 특징인 스탠퍼드의 건물들을 중심으로 한 마당을 만들어냈습니다. 메인 마당은 나중에 사각형 마당들을 통해 확장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스탠퍼드 대학 캠퍼스는 캠퍼스 자체가 휴양지 혹은 리조트에 놀러 온 것과 같은 착각이 들정도로 넓은 공간에 아름다운 건물과 건축양식 그리고, 조각과 예술 작품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이 아름다운 캠퍼스에 스탠퍼드 일가는 영원히 뼈를 묻게 되는데요. 리랜드 스탠퍼드는 1893년에 팔로 알토에 있는 집에서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하고, 부인 제인은 1905년에 눈을 감습니다. 이들의 유골은 스탠퍼드 대학의 북서쪽에 위치한 Stanford Mausoleum에 아들과 함께 안치되어 있다고 합니다.

 

스탠퍼드 캠퍼스의 크기는 미국에서 가장 큰 대학이자, 세계에서도 두 번째로 큰 대학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스탠퍼드 크기가 1,013만 평(8,180에이커)이라고 하는데요. 나무위키의 캠퍼스 크기 순위를 보니 국내 대학에서 캠퍼스 크기가 가장 큰 대학이 서울대입니다. 서울대 캠퍼스 크기가 620만 제곱미터(1533 에이커)로 확인이 됩니다. 두 개를 비교해 보니 스탠퍼드가 서울대보다 5.3배가 큰 것으로 계산이 됩니다.

얼마나 큰지 상상이 가시나요? 관악산을 끼고 있는 서울대인데, 스탠퍼드는 실리콘 밸리의 금싸라기 땅 북쪽에서 아주 넓게 캠퍼스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스탠퍼드대학과 코넬대학교와의 관계 그리고, 미국 대학의 기부 문화

대학은 이렇게 크고 아름답게 지었는데, 교수진이 없으면 말이 안되죠. 그래서, 스탠퍼드 부부는 코넬대학교의 David Starr Jordan을 스탠퍼드의 첫 총장으로 채용합니다. 그리고, 초대 총장인 조던은 코넬 대학교에서 캘리포니아까지 와줄 다른 교수진을 모집했는데, 이때, 코넬의 심리학 교수 Lewis Terman이 스탠퍼드의 심리학과 학장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미국 동부의 코넬대학교에서 그 당시 척박하다고 여겨졌던 미국 서부의 캘리포니아로 이전해서 서부 최고의 명문대학인 스탠퍼드의 틀을 잡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포스트 코넬이라는 말이 단순히 두 대학에 경쟁을 붙이자고 하는 소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런 사연을 겪고서 스탠퍼드 대학은 1891년 10월 1일에 문을 열었으며, 첫 해에는 약 555명의 학생이 등록했습니다. 스탠퍼드 대학은 설립 초기부터 혁신적이고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교육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이 대학은 전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연구 및 교육 기관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스탠퍼드 부부가 그들의 재산을 바친 원래 의도를 이어받아 학생들에게 성공과 사회적인 기여를 위한 교육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국내에도 '김밥 할머니'로 유명했던 이복순 여사님의 기부로 세워진 충남대학교 정심화 국제문화회관이라는 게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돈이 많은 개인이라고 해도 학문 연구나 미래 가치에 투자하기 위해 전재산을 대학에 기부하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미국은 기부 문화라는 게 상당히 보편적이며, 강력하고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많은 대학들이 기부금을 받아 캠퍼스 건물을 짓거나 시설을 개선하며 학문과 연구의 발전을 돕고 있는데요. 이러한 기부는 대학들의 발전과 성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대학과 기부자 간의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에도 도움을 줍니다. 기부자들에게는 대학에서 그들의 이름을 영구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남는 돈을 미련 없이 대학에 투척하곤 합니다. 자신이 졸업한 대학교의 "나의 이름" 비즈니스 스쿨이라고 불리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지 잘 아는 것이겠죠. 


유일한 아들을 병으로 잃은 스탠퍼드 부부가 스탠퍼드 대학을 짓고, 또 그곳에 영원히 안식한 이야기를 해보았는데요. 미국에는 대학 이름이나 단과대학 빌딩 등에 기부자나 설립자의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많아서 내면에는 이런 특별한 사연이 아주 많습니다.

슬픈 이야기도 있고, 먹먹한 이야기도 있는데요. 분명 학문의 연구와 사회발전에 큰 기여를 한 것이기에 대학 설립 역사를 보면, 어떨 때는 누구의 불행이 인류의 역사에 큰 업적을 낳는 계기가 되는 건가 싶어 좀 씁쓸하기도 합니다.

다음 기회에는 젊었을 때 실패한 사랑으로 독신의 삶을 살다 전 재산을 기부한 존스 홉킨스의 기부로 세워진 존스 홉킨스 대학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다음을 기대해주세요.

 

*이 글은 Stanford University의 Stanford History-Facts를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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